한국
604 / 문장의 무늬들 - 전명관 지음
최해식
2017. 11. 26. 21:16
-조각이란 더는 덜어낼 곳 없을 때 명품이 되고, 인생이란 마지막까지 덜어내는 과정 자체로만 진품이다. -205-
-세상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죄인인 것만 같다. 무한한 사랑을 주시고 서둘러 가셨으니 갚을 길 없는 채무가 되곤 한다.
부모 둔 어느 자식인들 그 나무 아래 서성이지 않았겠는가. -213-
-발톱으로 구름이라도 찢을 듯 황조롱이 하나가 정지비행 중이다.
박새라도 보았을까. 줍다 놓친 산밤을 따라 개활지까지 나온 다람쥐를 포착했을까.-217-
-먹구름은 하늘의 안색을 가린 가면이다. -220-
-악독한 자들에게도 살가운 가족이 있는 것처럼, 모진 겨울도 숨을 고른다. 언제 그랬냐는 듯 낯선 얼굴로 풀어졌다. 찬물에서 건져낸 평양냉면만큼이나 질겨 보이던 수양버들에서 날씨 덕에 물렁한 봄기운이라도 만져질 것 같다. -245-
-소양강은 탄탄하게 얼었을까. 백색 광장으로 보이지만 한 걸음만 디뎌도 차가운 물이 전신을 물어뜯을 것만 같다. .........시간은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아니라서 또박또박 달력을 넘겼다. -248-
-중 삼인 여동생은 사춘기 휴유증인지 예민하기가 탱자나무 가시 같았다. -255-
-발걸음은 안개보다 조심스러웠는데 자는 척 누워 있는 내 가슴으론 용암보다 뜨거운 것이 밀려들곤 했다. -256-
-.........272-끝. 그냥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