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 / 대마도1 - 이원호 지음
-대마도는 삼국시대에는 津島진도 라고 불린 우리 영토였으며, 고려 말까지 조세를 바치는 고려령 이었다.
그러나 대마도에 진을 친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고려 창왕2년인
1389년에 '박위' 를 시켜 대마도를 토벌했다. -55-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15일 건국 이후로 1950년 6월까지 무려 60여 회나 대마도 반환을 일본 정부와 일본을 관리하고 있던 미국 정부에 요구했다. -57-
-........아베의 말이 이어졌다.
"1592년에도 우리가 한국을 7년간 점령했지요. 조선은 두놈의 당파가 달랐기 때문에 , 당파 싸움에 나라가 절단 나든 어쩌든 상관하지 않는 놈들이라구요." -98-
-1419년 세종대왕 원년에 이종무 장군이 이끈 17,000명의 대마도 정벌이 있었다. (3차 대마도 정벌) -105-
-아베 신조는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조부는 중위원,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56, 57대 총리를 역임했다. -114-
-'에보시타케' 전망대에서 '아소만'을 내려다 보면 육지의 침강으로 형성된 아소만의 리아스식 해안은 절경이다. ..........특히 아소만은 러일 전쟁시에 '도고' 해군 제독이 일본 연합 함대 제3함대를 숨겨 놓고 있다가 러시아 함대를 기습했던 곳이다. -117-
-러일 전쟁 시 일본 해군 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는 러시아 발틱 함대를 대마도 해협에서 전멸시켰다. 도고는 함대를 3개 전대로 나뉘 1,2전대는 진해만에, 3전대는 아소만에 잠복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피로에 지친 발틱함대를 공격, 38척의 전함 중 19척을 격침시켰고 9척을 나포했드며,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을 포함한 6,100명의 러시아군을 포로로 잡았다. -151-
-"전후 60여년 동안 일본은 패전국이라는 압박감으로 눌려 지냈어.경제 성장만 내세우고 주변국들의 눈치만 보던 유약한 지도자들 때문이야"
........."배부른 돼지는 굶주린 늑대한테 잡혀 먹히는 법이라구. " -205-
-"한일 간의 역사를 보면 고려 시대부터 일천 수백 년 동안 일본의 한국 침략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다가 1592년부터 7년 동안 왜군이 조선땅을 유린한 참화를 겪었고, 마침내 조선은 일본에 의해 멸망하고는 36년간의 노예 같은 식민지 생활을 겪었지요." -221-
-황해 해전이란 1894년 9월17일, 지금부터 120년 전 압록강 하구 해상에서 청나라 북양 함대와 일본 연합 함대와의 해전을 말한다.
........일본 연합 함대는 북양 함대의 전함 5척을 격침시켰다. 이 해전 이후로 청나라 해군은 재해권을 상실했으며, 일본은 청일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청일 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상힐한 것은 물론이고, 일본에게 랴오둥반도와 대만, 그리고 무인도였던 센카쿠 열도까지 넘겨주었다. 그리고 1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 열도에 대한 반환, 지배권을 두고 분쟁 중이다. -246-
-대마도주 소宗씨의 시조는 '소 히게히사(종중상宗重尙)' 로 고려 고종33년인 1246년, 경상도 울산에서 건너와 대마도를 장악했다. 그 전까지는 신라 성덕왕9년인 720년부터 백제계 아비루 가문이 대마도를 통일시켜 지배해 왔다. -280-
-'박위' 에게 머리 숙여 보인 장수는 최무선이다. 12년 전인 우왕3년에 화통도감의 提調제조로 임명된 '최무선' 은 수많은 총통과 화전을 발명했으니 이 과정의 고초는 필설로 형용할 수가 없다. 최무선은 화포를 탑재하는 戰艦도 제작했으며 화기발사 전문부대인 火筒放射軍화통방사군 도 편성했다. 그래서 우왕6년인 9년 전에 전라도 진포에 왜선 500여 척이 몰려왔을 때 부원수로 참전하여 화포로 무장한 전함을 끌고 왜선을 대파시켰던 것이다.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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