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 지리산7 - 이병주 지음
-남부군은 기백산에서 황석산으로 옮겼다. 거기서 며칠 머무른 뒤 남계천을 건너 덕갈산으로 이동했다. 덕갈산은 거창,함양, 산청 3군의 접경에 있는 산이다. -9-
(출전; 유튜브) 남부군 ; https://youtu.be/qxiur5Y6JAg
-어느덧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겨울 해는 기울기 시작하면 눈 깜박할 사이에 저물어버린다. 일본어에는 "두레박 떨어지듯 지는 겨울 해" 라는 표현이 있다. -166-
-지휘관은 항상 100분의 1의 가능성에도 대비할 줄 알아야 하는데....., 결국 대대장 한 사람의 실책으로 여러 대원들이 죽은 거다. -185-
-눈이 소리없이 내리고 있었다. 적막 속에서 개울의 물소리만 들렸다. 이 바위, 저 나무 밑에 한둘씩 몸을 기대고 정세를 살피는 빨치산들의 머리 위와 어깨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갔다. -208-
-나는 무수한 살육을 보았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추악한 동물인가를 보았고 인식했다.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선 몇만 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인간이 짐승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은 일순에 지나지 않는다는 가공할 현상을 보아왔다. -290-
-용숫골은 시천면 중산리에서 칼바위골과 순두류 사이를 2킬로미터쯤 올라, 다시 3킬로미터를 가서 신선녀 들로 나서 깊은 숲에 덮여 있는 계곡으로 써리봉을 향해 굴곡한 곳이었다. 좁은 계곡엔 용추폭포가 이 있고, 중봉과 천왕봉 사이로 깊숙이 들어갈 수도 있어 경치가 명승이고 숨을 곳으로서도 거의 완벽했다. -300-
-박태영의 아들 박태규는 아버지를 닮아 총명하여 이규의 주선으로 파리 소르본 대학 화학과에 유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했다. 소르본 대학 창설이래 동양인으로선 처음 누린 영예라고 1971년9월1일자 파리의 신문들이 보도했다. -375-
-해방 직후부터 1955년까지 10년 동안 지리산은 민족의 고민을 집중적으로 고민한 무대이다. 많은 청년들잉 공비를 토벌한다면서 죽었고, 역시 많은 청년들잉 공비라는 누명을 쓰고 죽었다. 그들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두고두고 민족사의 대과제가 될 것이다. -377-
-작중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은 실재 인물이다. 특히 하준규,박태영은 세상을 제대로 만났다면 큰 인물로 성장할 자질이 있는데, 그들에게 운명은 너무나 가혹했다.
...............최근 하준규의 자녀 삼 남매를 만났다. 큰딸은 하와이로 시집가서 살고 , 남매는 서울에 있다. ........... 부모 없이 건장하게 자란
그들을 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378-
-작가는 파시스트에 저항한 스페인 인민전선의 허망한 정열을 거듭거듭 인용하고 있다. [지리산]에는 이현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상은 지리산 골짜기마다 스페인 인민전선의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음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이것은 스페인 내란때 죽은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 의 시 구절이다.
"어디에서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카탈루냐에서 죽고 싶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어느 때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별들만 노래하고 지상엔 모든 음향이 일제히 정지했을 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390-끝.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