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8/ 그남자의 아들 - 이남희 지음
-기다려 보란다고 이렇게 맥놓고 있으면 일이 안됩니다.
우는 아이에게 먼저 젖 준다고 점잖게 기다리다간 헛물켜기 일쑵니다.딱히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 이게 바로우리 한국 사회입니다. -13-
-우장춘 박사님께서 '종의 합성' 이라는 학설로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했다는게 사실인가요? 그 정도롤 유명하세요? 겹꽃 피튜니아를 개발해서 미국에선 박사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서요? -16-
[ 참고글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77XXXX100134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장춘 박사의 큰 업적 중에 하나가 바로 겹꽃 페튜니아의 육종이다. 이는 실용적으로나 학술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
-한국에 온 뒤 경무대로 찾아가 이승만을 처음 접견했을 때도 그랬다.
"오오,네가 바로 우범선의 아들이냐? "
잘못 들었나 싶어 그가 예? 하고 반문했다.
....... 우범선의 아들.
그 사실부터 말하다니, 이승만으로서는 우장춘이 아버지의 죄를 갚으려고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19-
-"서양이 삼백년 동안 이룩한 문명개화를 일본은 메이지 삼십년 동안 따라잡느라고 바쁜 거란다." -67-
-러일전쟁이 끝나고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삼기로 했다.
....... 조선사람들은 비겁한 놈들이야. 졌면서도 승복하지 않고 우리 일본사람들을 뒤에서 공격하고 반항하니까. 그러니까 조선사람은 항복이라말해도 믿으면 안돼. 의병이니 뭐니 폭동을 일으켜서 뒤통수를 친다니까. 비겁한 놈들. 조선사람은 열등국민이야. -99-
-"조선사람은 거짓말도 잘하고 저희들끼리 서로 배신하고, 막 싸우고, 서로 죽인다고 그러던데."
........ 너는 센진노코잖아.조선사람들은 열등한 국민이라 우리 일본이 지도감독하지 않으면 막 싸우고 서로 배신하고 그런대. -101-
-토오꾜오에서는 눈이 한번 내리면 며칠씩 세상이 눈 천지로 얼어붙는 거였다. 밤이면 싸락눈이 내리다 공중에서 꽁꽁 얼어붙어 함석지붕에 얼음알갱이 떨지는 소리가 콩알 쏟아지는 것처럼 두두두두 요란스럽게 울리기도 했다. -103-
-일본은 미국이나 영국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문명개화한 우수민족인데. 조선이난 중국은 두둔하고 미개해서 자기네 나라를 통치할 능력조차 없는 야만민족이라고요. 그래서 서양열강의 먹이가 되고 있으니 같은 아시아인이요, 황인종인 일본이 대신 나서서 아시아를 통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겁니다. -156-
-일본 사회에서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상대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대놓고 거절하거나, 상대가 내게 폐를 끼쳤다고 지적하는 일은 없다. -160-
-누런 흙먼지 섞인 바람이 몰아치는 날과 화창하게 갠 날이 번갈아 찾아오는 계절이 되었다. 봄기운은 점점 짙어졌다. 한밤중 창을 열면 온갖 꽃향기가 훈풍에 실려와 혈관을 들쑤셔 놓았다. 그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목련이며 벚꽃이 순식간에 피어났다가 져버리고, 유록색 어린 나뭇잎들잉 돋아나더니 점차 초록으로 무성해졌다. -163-
-'스나가'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사심없이 자네 선친을 좋아했다네. 예전 김옥균 공에게 감복했던 것처럼 자네 선친을 처음 만났을 때 예전 우에노 역에서 본 김옥균 공을 연상했다네. 나로서는 두번째 만난 진정한 호걸이었다고나 할까. -223-
-우장춘은 기다의 [조선합병사]며, [일로전쟁비사] 같은 책에 의지해 아버지에 관한 사항을 더듬고 다녔다.
........ 하루속히 문명개화를 이루어 나라를 바로 세우겟다고 나선것은 개화파였다. 한때는 그런 주장을 하는 게 목숨을 담보로 한 모험이엇다. 부패한 구제도에 기생하여 탐욕르 채우는 사람들이 왕비를 중심으로 완강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226-
-야트막한 산이며 웅숭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아늑한 굴곡들.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잇고, 파란 하늘과 푸른 소나무. 건조하고 온난한 기후. 붉고 기름진 흙. 겸손하게 엎드린 초가집과 그 곳에사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 언제가는 자신도 친척을 방문한다는 핑계로 그 땅을 밟아볼 기회를 가질 것이다. -230-
- 중국은 오 백년 조공의 역사를 들어 조선이 자기네 속국이라는 권리를 주장했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골칫거리 낭인들로 변한 무사들을 처리하고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고, 러시아는 소원이던 부동항을 얻으려고, 각각 조선을 넘보고 있었다. -247-
-우범선은 훈련대 대장으로 당시 훈련대는 신식군대로서 궁궐수비를 맡았는데 일본이 조선내 개화파들과 손잡고 명성황후를 재거하려 한다는 풍문에 불안을 느낀 왕은 훈련대를 해산하고 구식군대인 시위대에게
궁궐수비를 맡기기로 했다. 해산일은 음력 8월 10일이었다. -249-
-을미년 그 사건은 너무 끔찍하고 원통하고 수치스럽고,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일이었네. 명색이 독립국가라는 한나라의 왕비가 그토록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시신이 불타고 뼈조차 남지 않았다니. 아마 세계 어느 약소민족도 이런 수치스런 사건은 당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그것을 조선인이 저지른 일이라고 하면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그나마 위안이 될까? 무도한 왜놈들이 저지른 편이 나을까? 난 알 수가 없네.
........ 나는 사람을 사귈 땐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하지. 빛이 있다면 그늘도 있게 마련이라고. 친구가 되려면그늘이 아니라 그 빛난 점을 새겨봐야 한다. 사람이란 자의든 타의든 그늘을 품고 있게 마련인데, 그걸 일일이 들추어 비평하다보면 그 빛난점조차 놓치게 된다 -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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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범이라는 그늘을 가진 우범선과, 누구라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떳떳하게 살아간 우장춘 박사를 생각할 때면 그처럼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우리 삶의 가장 미묘한 역학 관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개화당이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몸바쳐 헌신했다고 칭찬하고 싶지만, 그런 한편으로 살아남은 개화당들이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일신의 영화를 누리는 대신 민족을 도탄에 빠뜨린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 우범선은 을미사변 당시 명성황후를 죽이고 일본으로 도망친 개화당의 한사람이고 그의 아들 우장춘 박사는 해방후 일본에서 돌아와 한국 농업이 기반을 닦은, 식물의 씨앗을 연구하는 육종학자인데 생전에 우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일본의 기하라 히또시木原均 박사라는 사실을 강조했다.-317-
-우박사는 이승만 정권의 볼모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을까?
그때부터 그들 부자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간간이 농업시험장뒤 여지산 산록에 있는 우장춘 박사의 묘소를 찾곤했다. 그 무덤가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수원 시가지는 서호의 물안개가 끼어 다음 생에 가서 뒤돌아본 이생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 우장춘은 세계육종학계에 뛰어난 연구논문들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는 '종의 합성' 이라는 논문을 발표 하고 당시 미국인들이 애호하던 겹꽃 피튜니아를 개발해내어 더욱 유명해진다. -318-
-우박사는 일본 여성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 2남4녀를 모두 일본인으로 키웠다. - 자식들만은 자신처럼 두 나라 사이에 끼여 갈팡질팡하지 않기를 바랐다는 말도 전해진다.-320-
-아버지 우범선은 중인계급에 속하기 때문인지 그에 대해 알려것이 별로 없고, 윤효정이 쓴 [구한말비사] 라는책에만 약간 언급되어 있다.
그 책의 저자 윤효정은 고영근을 사주하여 함께 우범선을 암살한 인물이다. 또 그는 구한말 독립협회며 대한자강회 등의 간부를 지내면서 애국적인 웅변으로 이름을 날렸으면서도 정작 한일합방 때는 총독부로부터합방하사금을 받는 등 행적이 그리 개운치 않은 인물이다. 그러니 [구한말비사] 의 내용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는 의문이다. -321-
-을미사변이 일어나기 전,새로부임하는 미우라 공사는 인천에 닿은 즉시 우범선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범선은 명성황후를 살해야야만 조선을 개혁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는 것이다. 즉 명성황후의 암살계획이 일본 정부가 아닌 개화당, 혹은 우범선 개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며 암살을 저지른 것도 일본인 폭도들이 아니고 바로 조선인 우범선이라는 주장을 펴는 것이다. -322-
-쯔노다 후사코는 [민비암살]에서나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 에서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이 어디까지나 일본 사람 개인의 범죄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몰랐다. 따라서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문제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일본이 책임은 피해가고 잇다.
.........그의 책들을 읽다보면 사실에 충실한 척 세부적인 것까지 집착하면서도 원인이나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면 슬쩍 간과하거나 지나쳐버리는 태도가 야스쿠니 신사 문제를 고맙다는 말로 뭉개려고 드는 요즘 일본인들의 태도와 똑같이 느껴진다. -325-
-쿠레는 히로시마 밑에 있는 앙증맞은 군항이다. 해군 때문에 형성된 도시 . 우리나라에 견준다면 진해에 해당될까.
.........시가지는 텅 비어 있었다. 도시 전체가 조용조용해서, 이제는 지쳐버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곱게 늙은 노파 같은 인상이었다. 우범선의 무덤을 보려고 신응원이라는 절을 찾아갔다.-326-
-토오꾜오의 에도 뮤지엄 첫머리에 걸려 있던 어마어마한 크기의 패리 제독 초상화.
..........한국 사람이라면 자기네를 침략한 사람을 저렇게 떠받들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 승자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숭상과 굴종이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어서 역겨울 지경이엇고, 그에 비례하듯 행해지는 약자에 대한 멸시와 천대 또한 나로선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328-
-330-끝.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