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사기열전 上 / 사마천 지음 , 김원중 옮김
-전국시대 지도(출전; 위키피디아 백과)
사기열전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 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
사기열전이 갖는 미덕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날카로운 탐구에 있다. 그 시대를 살다 간 인물을 조망해 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 -8-
-사기열전은 우리의 인생관에 있어서 '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 라는 물음에 대한 다양한 대답과 구체적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겪는 고충을 사마천은 거의 모든 인물들이 똑같이 겪었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 삶은 도식적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고, 또 수학 공식처럼 천편일률적으로 해 나갈 수 없는 것이 인간사이고 세상사이며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22-
1 백이열전 |
11자리자. 감무 |
21염파. 인상여 |
31 경포열전 |
41원앙. 조착 |
51위장군. 표기 |
61 유림열전 |
2 관안열전 |
12 양후열전 |
22 전단열전 |
32 회음후열전 |
42장석지. 풍당 |
52평진후. 주보 |
62 혹리열전 |
3 노장. 신안 |
13 백기. 왕전 |
23노중련. 추양 |
33 한신. 노관 |
43 만석. 장숙 |
53 남월열전 |
63대원열전 |
4 사마. 양저 |
14 맹자. 순경 |
24 굴원. 가생 |
34 전담열전 |
44 전숙열전 |
54 동월열전 |
64 유협열전 |
5 손자. 오기 |
15 맹상군열전 |
25 여불위열전 |
35 번. 역. 등관 |
45 편작. 창공 |
55 조선열전 |
65영행열전 |
6 오자서열전 |
16평원군. 우경 |
26 자객열전 |
36 장승상열전 |
46 오왕비열전 |
56 서남이 열전 |
66 골계열전 |
7 중니.제자 |
17 위공자열전 |
27 이사열전 |
37 역생. 육고 |
47위기. 무안후 |
57 사마상여 |
67 일자열전 |
8 상군열전 |
18 춘신군열전 |
28 몽염열전 |
38 부. 근. 괴성 |
48 한장유열전 |
58회남. 형산 |
68 귀책열전 |
9 소진열전 |
19 범수. 채택 |
29 장이. 진여 |
39 유경.숙손통 |
49 이장군열전 |
59 순리열전 |
69 화식열전 |
10 장의열전 |
20 악의열전 |
30 위표. 팽월 |
40 계포. 난포 |
50 흉노열전 |
60 급. 정열전 |
70 태사공 자서 |
-1편 백이열전
공자는 말했다. "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말채찍을 잡는 천한 일자리라도 나는 할 것이다. " "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디" "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한다" -37-
-한문제 때의 정치가 . 문인인 가의賈誼는 말했다. "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 "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성인이 나타나야 세상 만물도 다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 백이와 숙제가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했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더 드러나게 되었다. 안연이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갈 수 있는 것처럼" 공자의 칭찬을 받아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바위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의 명성이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느 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다. 시골에 묻혀 살면서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도,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겠는가?-38-
..................................................................................................
-백이와 숙제는 현인이지만 공자의 붓을 통해서 비로소 그 이름이 드러났고 , 안회는 학문에 충실하였지만 공자의 *기미驥尾 * 에 붙음으로써 그 품행이 더욱더 돋보인 것이다.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서 간다는 고사를 인용하여 안회가 공자의 후광을 받은 경우를 비유하였음.*)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16-
-2편 관菅 . 안晏 열전
기원전 785년 제나라 양공이 피살되자 공자 소백과 규는 제나라 군주가 되기 위해 다투었다. 그 당시 포숙은 소백을 보좌했고 관중은 규를 보좌했다. 이후 소백은 먼저 제나라로 가서 군주가 되었는데 이가 환공이다. 나중에 포숙은 관중을 추천하여 경卿이 되도록 했다. 환공은 옛날의 원수인 관중을 재상으로 삼았다.... 관중은 제환공이 춘추시대의 첫번째 패주가 되는 데 크게 기여하여 춘추시대 최고의 군사軍師로 꼽힌다.
안영은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으로 50년 동안 집정하면서 제나라를 중흥시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떨쳤다. 그는 30년 동안 옷 한 벌로 생활했을 만큼 검소했다. 그는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명재상이었다.-39-
-관중은 제나라 재상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 창고의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42-
-월석보 가 안영에게 말했다. "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겐는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 -44-
-태사공은 말한다. 왕에게 간언할 때는 왕의 얼굴빛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았으니, 이것은 ' 조정에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 ' 는 마음가짐이었으리라! 오늘날 안자(안영)가 살아 았다면, 나는 그를 위해서 채찍을 드는 마부가 되어도 좋을 만큼 흠모한다."-45-
.............................................................................................
-제나라 환공은 관중을 써서 패자覇者가되고,
제나라 경공은 안영(안자)를 써서 치세를 이루었다. 그래서 관안열전 제2편을 지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18-
-안영이 임금에게 충간할 적에는 조금도 임금의 얼굴빛에 구애되지 않았던 것을 보면, '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 나와서는 허물을 보충할 것을 생각한다. ' 는 것으로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
가령 안자가 오늘날에 있다고 하면 나는 그를 위해 채찍을 손에 잡은 마부가 되는 것도 사양치 않을 만큼 그를 흠모한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24-
-3편 노자 . 한비열전
용이란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느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으면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9-
..........................................................................................
-노자는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으로 써 주나라의 장서를 관리하는 사관이었다. 노자를 만난 공자는 제자에게 말했다.
" 새는 날고 고기는 헤엄치고 짐승은 달리는 것이라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달리는 것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를 드리워서 낚고 나는 것은 화살을 쏘아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고 하니 나로서는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나는 오늘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용과 같은 존재여서 전혀 잡힐 것이 없더라 " 라고 말했다.
노자는 도와 덕을 닦아서 그 학문과 스스로의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썼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26-
-4편 사마양저 열전
-
....................................................................................
-사마양저는 '전완' 의 먼 후손이다.
제나라 경공때 '안영' 은 '양저'를 경공에게 추천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39-
-5편 손자 .오기열전
-
.............................................................................................
-손자(손무) 는 제나라 사람이다.
병법에 뛰어났으므로 오나라 왕 합려 의 초빙을 받았다.-44-
-손빈은 손무의 후손으로서 일찍이 ' 방ㅇㄴ ' 과 함ㄱ 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 ' 은 공부를 마친 뒤 위나라 '혜왕' 의 장군이 되어다.
손빈은 제나라 장군 '전기' 에 의해 ' 위왕'에게 천거 되었다.
손빈이 전기에게 말했다.
" 삼진 三晉 * 중국 춘추 시대 ( 주나라가 동쪽을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403년 까지 약 360년간으 전란 시대 ) 말기에 晉나랄르 받든 세 재상인 위사 , 조적, 한건 이 각각 세운 魏나라, 趙나라, 韓나라를 이르는 말 * ] 은 원래가 사납고 용맹스럽습니다.
병법에는 ' 슬리에 취해 백 리를 급히 달리는 군사는 그 장수를 잃게 되고 50리를 급히 달리는 군사는 반밖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 ㄱ 했습니다. -50-
-오기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용병에 능했다. 오기는 일찍이 노나라 임금을 섬겨 노나라장군 에 임명되어 제나라와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그후 오기는 위魏나라의 문후를 찾아가 위나라장군 에 임명되어 진나라르 쳐서 5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문후가 죽은 뒤 그의 아들 '무후' 를 섬겨면서 " 나라가 보배로 삼아야 할 것은 임금의 덕이지 지형이 아니라고 했다."
그 후 오기는 초楚나라로 건너갔다.
초나라의 도왕은 오기를 초나라 의 재상 으로 임명했다.
오기는 법령을 개정하고 필요치 않은 벼슬을 없애버려 왕족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고 나중에 도왕이 죽자 왕족들의 반란으로 죽음을 당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 오기는 무후에게는 형세보다 덕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해 주면서도 자신은 초나라에서 각박하고 몰인정하게 행동하여 목숨을 잃었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 라고 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51~ 59-
-6편 오자서伍子胥 열전
춘추시대 오나라王 합려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하고 부차王에게는 월나라 구천王을 멸망시켜 뒤탈을 남기지 말 것을 권유하였다. -80-
......................................................................................
-建이 참소를 만나니 그화는 '오사' 에게 미쳤다. 오사의 큰아들 '상'은 아버지를 구하려 하고 '상' 의 아우인 '운' 은 오나라로 도망쳤다. 그래서 <오자서 열전 제6> 을 지었다.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며 이름은 '운'이다-60-
-7편 중니제자 열전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기로하자, 공자는 ' 노나라는 조상의 무덤이 있는 우리 부모님의 나라이다. 이 나라가 이처럼 위태로운데, 어찌하여 나라를 구하러 나서지 않는가? ' 이 말에 제자 자공이 나섰다.
자공은 오나라王 부차에게 말했다. 작은 월나라를 치고 강한 제나라를 두려워하는 것은 용맹스런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용맹스런 사람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지 않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왕자는 다른 나라의 후대를 끊지 않음으로써 의를 세웁니다......... 그러자 오나라 왕은 매우 기뻐하며 자공을 월나라로 보냈다. 월나라 왕 구천은 길을 청소하고 교외까지 나와 자공을 맞이하고 몸소 수레를 몰아 자공을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 자공은 또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일을 좋아하여 때를 보아서 돈을 잘 굴렸다. 그는 남의 장점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하였으나 남의 잘못을 덮어 주지는 못하였다, 그는 일찍이 노나라와 위衛나라에서 재상을 지냈으며, 집안에 천금을 쌓아 두기도 하였다. 그는 제나라에서 삶을 마쳤다. -109~ 116-
-공자가 자장子張에게 말했다. ' 많이 듣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자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그 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다면 벼슬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 -118-
...........................................................................................
-공자가 존경하는 인물로는 주나라의 노자와 위나라의 거백옥, 제나라의 안평중, 초나라의 노래자, 정나라의 자산, 노나라의 맹공작 등이 있다. -81-
-염옹(중궁)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 내 집을 나가 세상과 교제를 할 때에는 귀중한 손님을 접대하듯해야 한다. 벼슬에 올라 백성을 부릴 경우에는 결코 가볍게 대해선 안 된다. 큰 제사를 지낼 때처럼 정중하게 대해야 한다. 제후국에서 벼슬을 하거나 대신들 집에서 일을 보거나 간에 남에게 원한을 사는 일이 없도록
명심해라. " -83-
-자공은 오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가서 왕에게 말했다.
" 생각이 미리 정해져 잇지 않으면 급한 일에 대처할 수가 없고 군사가 먼저 정비되어 있지 않으면 적을 이기지 못한다 " 라고 들었습니다.
...... 자공이 한 번 움직임으로써 노나라를 구하고 제나라를 뒤흔들어으며 오나라를 격파하고 진나라를 강대하게 만들었으며 또 월나라를 패자로 만들었다. 즉 자공이 뛰어다님으로써 각국의 형세가 뒤바뀌어 10년 동안 5개국에 각각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99-
-자장이 벼슬자리를 얻는 방법에 대해 공자에게 물었다.
" 우선 많이 들어라 그리고 의심나는 점은 빼 버린 다음 그 나머지만을 조심해서 말한다면 말에 실수가 적을 것이다.
또 많이 보아라. 그리고 위태로운 것을 뺀 다음 그 나머지를 조심해서 행한다면 행동에 뉘우침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벼슬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지게 마련이다. "
" 말이 참되고 행동이 착실하고 조심스러우면 비록 야만국에 가 있어도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 -102-
-8편 상군( 상앙 )열전
-
-
..............................................................................................
-
-상앙은 진나라로 가서 효공을 만났다
처음에 상앙은 넉넉하고 어진 마음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왕도정치를 말했다
이어 힘으로 다스리는 패도정치를 이야기하니 효공은 그제서야 크게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법치를 이야기하자 효공은 감동하여 재상으로 임명했다. [(열네살에 읽는) 사기열전-전호근 옮김 ]-50-
-9편 소진열전
소진은 초나라 위왕威王에게 말했다. ' 모든 일은 혼란스럽게 되기 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은 일어나기 전에 대책을 세워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환이 닥친 뒤에 걱정하면 이미 늦습니다. -166-
-소진이 제나라 왕에게 말했다. ' 옛날에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은 화를 복으로 바꾸고, 실패를 기회로 삼아 성공한다고 합니다. -170-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제나라 사람들의 자주색 비단은 질이 나쁜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값은 열배나 비싸고 월나라 왕 구천은 일찍이 회계산으로 쫓겨났지만 오히려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일들입니다.-179-
-연나라를 꾸짖을 때는 교동을 빼앗은 것을 구실로 하였고 주나라를 꾸짖을 때는 제수 서쪽 지역을 빼앗은 것을 구실로 삼았으며 위나라를 꾸짖을 때는 섭과 채를 빼앗은 것을 구실로 하였고 초나라를 꾸짖을 때는 맹액의 요새를 막은 것을 구실로 하였으며 제나라를 꾸짖을 때는 송나라를 깨뜨린 것을 구실로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진나라 왕이 남을 꾸짖는 말은 둥근 고리처럼 돌고 돌며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나는 새처럼 재빨랐으므로 태후도 막을 수 없었고 양후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185
-
-10편 장의 열전
위나라는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서쪽으로는 한나라와 이웃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조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잇고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위나라의 땅의 형세는 본래 싸움터가 되기에 알맞습니다. 위나라가 남쪽으로 초나라와 손을 잡아 제나라에 가담하지 않느다면 제나라는 위나라 동쪽을 칠 것입니다. 만일 동쪽으로 제나라와 손을 잡고 조나라 쪽에 서지 않는다면 조나라는 위나라 북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한나라와 손을 잡지 않는다면 한나라는 위나라 서쪽을 칠 것이고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면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다면 초나라가 위나라 남쪽을 칠 것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는 지세인 것입니다.-195-
-장의는 위나라의 애왕을 설득했다. 신이 듣건대,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197-
...............................................................................................
-장의가 초나라 회왕에게 말했다.
" '공이 크면 위험에 빠지기 쉽고 백성이 고달프면 윗사람을 원망한다. ' 고 했습니다. 위험에 빠지기 쉬운 공을 지키기 위해 강한 진나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신의 생각으로는 대왕께 위태로운 일입니디. "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191-
-한나라 왕을 설득하고 진나라로 돌아온 장의에게 진나라 '혜왕' 은 장의를 5읍의 영주로 봉하고 무신군 이란 호를 내렸다. 그리고 '혜왕' 은 장의를 동쪽에 있는 제나라에 보내 민왕을 설득 하게하고 또 서쪽으로 가서 조나라 왕 에게 말했다.
" 소진은 제후들을 현혹시켜 옳은 것을 그르다고 말하고 그른 것을 옿다고 하여 제니라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다가 일이 발각되자 크게 노한 제나라 왕은 소진을 장터에서 거열형에 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자가 낸 계책으로 천하가 연합되지 않을 것은 처음부터 명백한 일이었습니다. -195~ 198-
-태사공은 말한다.
삼진(한 .위 .조)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웅변에 능한 인물이 많았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도 심하였으나 세상 사람들이 자의보다 소진을 미워하는 것은 소진이 죽은 뒤 장의가 소진의 단점을 들춰 내어 부풀려 말하고 자기의 유세를 유리하게 하여 연횡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진실로 위험한 인물이다. -211-
-
-11편 저리자 .감무열전
-
.....................................................................................
-진나라가 동방의 땅을 차지하고 제후들의 패자가 된 것ㅇ은 저리자와 감무의 꾀가 있었기 때문이다. ........
........진나라 혜왕이 죽고 태자인 무왕이 자리에 올랐다.
무왕은 장의와 위장을 내쫓고 저리자와 감물르 좌우 승상에 임명했다.
진나라는 감무를 보내 한나라를 쳐서 의양을 함략시켰고 또 저리자를 시켜 전차 백 승을 이끌고 주나라로 향하게 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213-
-혜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장의와 위장은 진나라를 떠나 동쪽의 위나라로 가게 되었다.
이 무렵 촉후 '위' 가 반란을 일으키자 진나라는 감무를 보내 촉을 평정시켰다.
감무가 돌아오자 그를 좌승상에 , 저리자를 우승상에 임명했다. -216-
-12편 양후열전
-
...................................................................................
-'양후 위염' 은 진나라 소와의 어머니 '선태후' 의 동생이다.
진나라 무왕이 죽었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동생을 왕으로 세웠다. 그가 바로 소왕이다.
소왕의 어머니는 '선태후'라 부르게 되었다. 선태후에게는 두 동생이 있었다. 바로 아래 동생이 '양후' (위염)라 불렀다. 둘째 동생은 화양군 '미융' 이다.이들 중에서 '양후(위염)' 이 가장 현명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232-
-13편 백기 .왕전열전
-
.......................................................
-남쪽으로 초나라의 언과 영을 함략시키고 북쪽으로 조나라의 장평을 꺾어 한단을 포위한 것은 무안군 백기의 지휘였고
형을 무찔러 조나라를 멸망ㅅ킨 것은 왕전의 계략이었다. ..........
백기는 용병에 뛰어나 진나라 '소왕'에게 등용되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242-
-진시황26년(기원전221년) 진나라는 드디어 천하를 통일했다. 왕씨와 몽씨는 그 중 가장 공로가 많았다.
태사공은 말힌다. 옛 속담에 '자尺도 짧은 데가 있고 치寸도 긴 데가 잇다' 고 했다.
'왕전' 은 진나라 장군으로서 6국을 평정했다. 그 당시 왕전은 노련한 장수로서 시황제는 그를 스승으로 우러르며 받들었다. 그러나 진나라 왕을 잘 보필하여 덕을 세워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하지를 못하고 구차스럽게 시황제의 뜻에 맞추어 그 환심을 사다가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255~ 256-
-14편 맹자 . 순경열전
-
-15편 맹상군 열전
소대가 맹상군에게 말했다. " 오늘 아침 저는 밖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무인형과 흙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인형이 '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 거야 ' 라고 말하자 흙인형이 ' 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허물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러가야 할지 모를 거야' 라고 대답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당신께서 굳이 가려고 하시니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은 흙인형의 비웃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려는 생각을 그만두었다. -279-
.............................................................................................
-맹상군의 이름은 전문. 그의 아버지 '전영'은 제니라 '위왕'의 막내아들이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266-
-풍환이 맹상군에게 말했다.
" 살아 있는 자가 반드시 죽는 것은 만물의 이치입니다. 부귀하면 추종하는 자가 많고 빈천하면 교우가 적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아침에 시장가는 사람들을 보면 앞을 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면 아무리 팔을 붙잡아도 뿌리치며 가 버립니다. 그것은 저녁에는 시장에 상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군주께서 자리를 물러났을 때 빈객들이 모두 떠나 버린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한 이로 원망을 하고 함부로 빈객의 길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285-
-16편 평원군 .우경열전
-
......................................................................................
-당시에는 이처럼 제니라에 맹상군, 위나라에 신릉군, 초나라어ㅔ 춘신군 (- 이들을 조나라의 평신군과 함께 전국사공자 戰國四公子라고함 -) 이 있어서 서로 경쟁적으로 선비들을 불러 모아 후대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289-
-17편 위공자열전
-
........................................................................
-위나라 공자 '무기'는 소왕의 막내아들이자 '안희왕'의 동생이다 안희왕이 즉위하면ㅅ 그를 신릉군에 봉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307-
-18편 춘신군열전
-
...............................................................................
-춘신군은 초나라 ㅏ 사람이다.
경양왕은 춘신군 '황헐'이 변곤이 뛰어난 것을 보고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323-
-춘신군은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로 쳐들어올까 봐 진나라 소왕'에 게 글을 올렸다.
" <서경>에는 '처음이 없는 사람은 없으나 끝을 잘 맺는 사람은 드물다. ' 고 했고 <역경>에는 '여우가 물을 건너다가 그 꼬리를 적신다 ' 고 했습니다. 이는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 을 말한 것입니다. -326-
-19편 범수 . 채택 열전
범수는 위나라 사람이고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은 고향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았으나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다. 전국시대 말기 범수는 진나라 소왕을 도와 멀리 있는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어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계책을 세웠다.-341-
-범수는 소왕에게 말했다. 옛 시에도 ' 나무의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지고 가지가 부러지면 나무의 기둥을 해친다 ' 고 했습니다. 수도가 지나치게 크면 나라가 위태롭고 신하가 지나치게 존중되면 군주가 낮아집니다.-256-
-채택이 응후 (=범수)(진나라 소왕時代재상. '응'땅의 후작으로 봉해져 '응후'로 불리게 되었다) 에게 말했다. 옛말에도 '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 ' 고 했습니다. 만물이 왕성해지면 곧 바로 쇠약해져 떨어지는 것은 천지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의 영원한 도리(常道) 입니다. 그래서 나라에 도가 시행되면 나아가서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시행되지 않으면 물러나 숨어야 합니다. 성인이 말하기를 '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면 덕이 있는 자를 만나기에 이롭다. ' ' 정당하게 얻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 고 했습니다. ............ 제가 듣건대, '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잇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 ' 고 합니다. 또 옛글에는 ' 성공했으면 그 자리에 오래 있지 말라 ' 고 했습니다. ............ <역경>에는 '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 ' 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며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점을 잘 생각하시기 바람니다. ' 좋은 말씀입니다.' 라고 응후가 말했다. -370~ 375-
..........................................................................................
-범수는 진나라 소왕을 만나 간했다.
"오제 같은 성인도 죽었고 삼왕 같은 어진 분도 죽었으며 오패 같은 착한 사람도 죽었습니다. 죽음이란 사람으로서는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을 몸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진나라의 과오를 바로잡는 것이 바로 신이 바란 것인데 또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348-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채택이 응후 (=범수)(진나라 소왕時代재상. '응'땅의 후작으로 봉해져 '응후'로 불리게 되었다) 에게 말했다.
<역경>에 말하기를 ' 끝까지 올라간 용은 뉘우칠 날이 있다. ' 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올 줄을 모르고 뻗을 줄만 알고 굽힐 줄을 모르며 나아가는 것만 알고 돌아설 줄을 모르는 사람을 바유해 말한 것입니다 " 라고 말했다.
며칠 후 응후는 소왕에게 말했다. 진나라 소왕은 채택의 재주가 쥐어난 크게 기뻐하며 그를 객경에 임명했다. 응후는 곧 병을 핑계로 재상의 직인을 돌려주었다. 이리하여 범수는 재상의 지위에서 물러났다.
소왕은 범수의 천거를 받아들여 '채택' 을 진나라 재상에 임명하였다.-378-
-20편 악의열전
-
...............................................................................................
-악의는 현명하여 처음에 조나라에 천거되었다가 위나라로 갔다가 다시 연나라 소왕에 의거 아경( 상경 다음가는 벼슬)에 임명되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380-
-21편 염파 . 인상여 열전
-
...............................................................................................
-염파는 조나라 혜문왕 때 상경에 올랐다.
인상여는 조나라 혜문왕 때 진나라 소왕이 '화씨벽을 15개의 진나라 성과 화씨벽을 교환하자고 하여 진나라로 사신으로 파견 되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392-
-22편 전단열전
-
-23편 노중련 .추양열전
-
-24편 굴원 .가생열전
-
..........................................................................................
-굴원은 초나라 회왕'때 벼슬을 하였고 문장에 능했다.
<사부>를 지어 정치를 비판하고 예를 차례로 들어 의를 강조한 것이 굴원이 지은 <이소> 이다. ........
..........굴원은 왕이 신하의 말을 가려 들을 줄 모르고 거짓 간하고 아첨하는 무리가 왕의 총명을 덮어서 그릇된 말이 나라를 해치고 바른 선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근심하던 끝에 <이소>를 지었다. '이소' 란 근심스러운 일을 만난다 는 뜻이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443~ 444-
-초나라 회왕은 충성스러움과 충성스럽지 않음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안으로는 정수에게 현혹을 당하고 밖으로는 장의에게 속았으며 굴원을 멀리하고 상관대부아 영윤 자란을 믿어 군사는 꺾이고 땅은 뺏기어 6개 군을 잃고 몸은 진나라에서 객사하여 천하의웃음거리가 되엇다. 이것은 사람을 보는 밝음이 없었던 탓이다. -448-
-굴원이 죽은 후에 초나라는 하루하루 땅을 뺏겨 여토가 좁아지고 수십 년 만에 결국 진나라에게 멸망했다. -452-
-가생은 한나라 낙양 사람이다.
한나라 '문제' 는 '가생'을 박사(관직 이름)로 삼았다. 그때 가생의 나이는 20세 남짓하여 가장 젊은 박사였다. 그리고 1년 만에 파격적으로 태중대부 즉 궁중고문관이 되엇다.
마침내 장사왕의 태부로 가생은 좌천되어 상수를 건널 때 글을 지어 물속에 던져 굴원을 조문했다. 이는 굴원이 멱라수에 잠긴 지 백여 년 뒤에 일어난 일이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453~ 454-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이소' '천문' '초혼' '애영' 등을 모두 읽고 나서 몹시 슬퍼했다. 또 일찍이 장사에 가서 굴원이 몸으 던진 멱라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그 인격을 돌이켜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또 가생이 굴원을 조문한 글을 보고 굴원이 그만한 재능이 있으면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어느 나라에선들 받아들이지 않을 리가 없는데 스스로 그러한 최후를 부른 것은 어찌 된 일인가 하고 괴이하게 생각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462-
-25편 여불위 열전
본래 한나라의 큰 상인으로 여러 제후국을 주유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뚤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진나라의 상국이 되어 진나라의 통일 사업에 큰 공을 세웠으며 불후의 명작 <여씨춘추>를 짓기도 했다.-459-
........................................................................................
-진나라 소왕이 죽고 태자 안국군이 임금이 되어 화양 부인을 왕후로 하고 자초를 태자로 삼았다.
안국군이 왕으로 즉위한 지 1년 만에 죽고 시호를 '효문왕'이라 했다. 그 뒤를 이어 자초가 임금이되엇다. 이 사람이 '장양왕'이다.
장양왕 원년에 여불위를 승상에 앉혀 '문신후' 라 봉했다. -467-
-진나라 시황제 10년 10월에 상국 여불의는 관직에서 쫓겨났다.
여불위는 자기의 권세 때문에 시황제가 점점 자기를 옥죄어 온다고 생각하고 결국은 죽임을 당할 것 같아 독주를 마시고 자살했다. [사기열전1 -김영수 . 최인욱 역해] -470-
-26편 자객刺客 열전
노나라 曺沫,오나라 전제, 晉나라 예양, 지軹의 섭정, 연나라 형가 등
춘추전국시대의 자객은 "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 는 보은 사상이 투철했다. 조말과 형가는 약자로서 정의를 실천하려는 의협심의 발로이다. 특히 사마천은 형가를 독자들의 눈앞에서 살아움직이듯이 생동감 있게 그렸다. -468-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는 것은 가벼운 기러기 깃털 하나를 화로의 숯불 위에 놓아 태우는 것처럼 아주 쉬운 일입니다. -484-
-형가는 진나라 왕 정을 살해하려다 실패하자 연나라 왕 희喜의 태자 단을 무찔러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로 불렀다. 그가 진나라 시황이다.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 제후국에서 온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았다.-495-
...............................................................................................
-조말은 노나라 장공때 장군이 되어 제나라 ( 환공 때) 와싸웠다.
조말이 비수를 가지고 제 환공을 위협하여 제나라에 빼앗긴 땅을 모두 돌려 받았다. 이때 제환공은 관중의 조언을 받고 돌려 주었다.[사기열전2 -김영수 . 최인욱 역해] -12-
-오나라 왕 요 12년 4월 병자일에 공자 광은 그의 빈객 '전제'를 시켜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이 사람이 '합려' 다. [사기열전2 -김영수 . 최인욱 역해] -15-
-'예양은 진나라 사람으로 지백을 섬기게 되엇다. 지백은 그를 매우 존경하고 아꼈다. '조양자' 가 지백을 멸망시키고 그의 두개골에 옻칠을 하여 요강으로 사용했다. 예양은 산속으로 달아나며 혼다 다짐했다.
" 사나이는 자기르 알아주는 이를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를 위해서 꾸민다 고 하지 않던가. 지백은 진실로 나를 알아준 知己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는다면 죽어서 나의 혼백도 부끄러울 것이 없으리라. " [사기열전2 -김영수 . 최인욱 역해]-16-
-'섭정'은 韓나라 사람으로 본인(섭정)을 알아준 엄중자를 위해 한나라 애후 때 재상 ' 협루' 를 살해하여 엄중자의 원수를 갚아주고 자결하였다. 섭정의 누이 '섭영' 이 찾아와 말했다. '엄중자' 는 내 동생의 인물됨을 알고서 곤궁하고 천한 지위에 있는 그와 사귀었으니 그 은혜는 매우 두터운 것입니다. 그것을 보답하기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죽는다 고 합니다. 내가 아직 살아 잇기 때문에 자기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내가 모르도록 종적을 감추려고 한 것입니다. 내가 어찌 내 몸에 닥칠 벌을 겁내어 어진 동생의 이름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 한나라 사람들은 섭영의 말에 매우 놀랐다. [사기열전2 -김영수 . 최인욱 역해] -19~ 23-
-'형가' 는 위나라 사람으로 나중에 연나라로 옮긴뒤 백정과 축의 명수인 ' 고점리' 라는 자와 가까이 지냈다.
형가는 놀기를 좋아했지만 그의 사람됨이 침착하여 독서를 즐겼다.
연나라 태자 '단' 이 진시왕에게 보복할 인물을 찾았다.
태부 '국무' 가 태자 '단' 에게 말했다.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기를 던져 놓는것과 같은 일이다. "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는 것은 새의 깃털을 화로에 태우는 것과 같은 일 로서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독수리나 매처럼 탐욕스럽고 사나운 진나라가 원한을 품고 포악한 노여움을 터뜨리면 그 맹렬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
'전광' 선생이 태자 '단'에게 말했다.
"날랜 말도 기운이 왕성할 때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나 노쇠하면 둔한 말조차도 앞서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태자는 제가 젊고 기운이 왕성할 때의 일만 들었을 뿐 정력이 소모한 지금의 처지는 모를십니다. " [사기열전2 -김영수 . 최인욱 역해] -24~28-
-
-당시 사람들은 '예양'의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역사를 동아보면 목적과 그 목적을 이루는 ㄴ수단이 정당한지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인데 그 선택니 이 무엇을 위한 건지 그걸 이루려면 어떤 방법이 옳은지, 늘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단다. 사마천은 수많은 역사의 예를 통해서 우리가 더 지혜롭게 판단하고 제대로 선택하기를 바란 게 아닐까. [(열네살에 읽는) 사기열전-전호근 옮김 ]-104-
-27편 이사 열전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荀子의 문하생으로 훗날 진시황을 도와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496-
-이사는 초나라 상채 사람으로 젊은 시절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다. 그는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창고에 있는 쥐들은 쌓아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면서도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사는 탄식하며 말했다. "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렸을 뿐이다. " ........... 순경荀卿에게서 공부를 마치자 작별 인사를 이렇게 하였다. " 저는 때를 얻으면 꾸물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진나라 왕은 천하를 집어삼킬 때 지위나 관직이 없는 선비가 능력을 펼칠 시기이며 유세가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비천한 위치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서도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지위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데 있습니다. 오랜 세월 낮은 지위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실행하지 않는 것에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나라 왕에게 유세하려고 합니다. "
이사가 진나라에 이르렀을 때 마침 장양왕이 죽었으므로 이사는
승상 문신후 여불위를 찾아가 그의 사인이 되었다.-497-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잇었으며 하해河海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엇습니다. 왕들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502-
-"나는 순자가 '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 고 한 말을 들었다.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자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햇다고 할 수 잇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 나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 -506-
-큰 일을 행할 때는 작은 일을 돌아보지 않으며 큰 덕이 있는 사람은 일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작은 일을 돌아보다가 큰일을 잊어버리면 뒤에 반드시 재앙이 닥치며 의심하며 주저하면 뒤에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결단을 내려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면 귀신도 피하고 뒷날 성공하게 됩니다. -508-
-2세 황제 호해는 조고에게 말했다
'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여섯 필의 준마가 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513-한비자는 "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지만 엄격한 가정에는 거스르는 종이 없다 ' 고 말했습니다.-519-
-조고가 이사를 심문했다. 이사는 붙잡혀와서 탄식했다.
" 아 슬퍼구나! 도리를 모르는 군주를 위하여 무슨 계책을 세울 수 있겠는가? 옛날 하나라 걸왕은 관용봉을 죽이고, 은나라 주왕은 왕자 비간을 죽이고, 오나라 왕 부차는 오자서를 죽였다. 이 세 신하가 어찌 총명하지 않았겠는가? 그들이 죽은 것은 충성을 다한 군주가 도리를 모랐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지혜는 세 사람만 못하고 2세의 무도함은 걸왕, 주왕, 부차보다도 더하다.-526-
..................................................................................................
-비천한 지위에 있는 자가 거기에 대해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마치 짐승이 고기를 앞에 두고서도 사람들이 보고 있으므로 참고 그냥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비천한 것처럼 부끄러운 것은 없으며 곤귱한 것처럼 슬픈 것은 없습니다. 오래도록 비천하고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방하고 남의 이득을 미워하며 몸을 무위자연의 심경에 맡겨 스스로 고상하다고 하는 것은 선비 된 자이 진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서쪽 진나라 왕에게 유세하려고 합니다. "
이렇게 하여 이사는 진나라로 가 재상 문신후 여불위의 사인이 되었다. [(중학생이 보는 ) 사기열전 2 - 김영수. 최인욱 역해]-42-
-조고는 '이사'를 설득했다.
" 가을이 깊어 서리가 내리면 초목은 시들고 봄에 얼음이 풀려 물이 흔들리면 만물이 발동하는 ㅓ 것은 자연의 작용입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이 도리를모를십니까? " [(중학생이 보는 ) 사기열전 2 - 김영수. 최인욱 역해] -55-
- 2세 황제가 '조고'에게 말했다.
" 사람이 나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마치 말 여섯 필이 끄는 수레가 지나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이 아, 하고 말할 사이도 없이 지나가 버리오. " -58-
.................................................................................................................................................................................................................................................................................................................................................................................................................................................................................................................................................................................................................................................................................................................................................................................................................................................................................................................................................................................
-태산은 한 덩어리의 흙도 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높을 수 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마다하지 않기 떼문에 그렇게 깊을 수 있으며 왕들은 한 명의 백성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그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것 " 이라는 부분은 정말 심오하고 시적이에요.
사마천이 이사의 이 글을 기록한 이래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명문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사가 만든 법령을 다른 사람이 비판하는 것은 용밥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서와 백가의 저술을 모두 페기하도록 했다. 이른바 '분서갱유'이다. 이사는 시서를 폐기함으로써국가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않고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생매장한 '분서갱유'정책을 펼친것은 씻을 수 없는 잘못이라고 할 수 잇다.
이사는 자기가 설 자리는 중요하게 여겼지만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을 포용하지는 못하여 두고두고 지식인들의 ㅣ 비나을 받았다.
이사는 "티끌도 무시하지 않는 태산, 작은 물방울도 끌어안는 바다" 를 남다르게 이해했으면서도 정작 나랏일은 그렇게 처리하지 못했고 계략이 뛰어났던 이사가 결국 다른 사람의 계략에 죽고 말았으니, 지혜롭게 살고 죽는 일이 정말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열네살에 읽는) 사기열전 - 전호근 옮김 ] -112~113-
-28편 몽염 열전
진나라가 통일된 후 몽염은 흉노를 압박하고 10여년간 북방을 지키면서 만리장성을 쌓아 진시황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자 조고와 이사의 음모로 사구정변이 일어나게되었고 이 일로 몽염은 동생 몽의와 함게 참소를 받아 죽게 된다.ㅡ532-
-29편 장이 .진여열전
-30편 위표 . 팽월열전
......................................................................................
-위표가 '역생'에게 말했다.
" 인간의 일생은 백마가 달리는 것을 문틈ㅇ 사이로 보는 것같이 잠깐 동안에 지나지 않는다. 한나라 왕은 오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기고 상하의 예절을 분별하지 않는다. 나는 한나라 왕과는 만나지 않겠다. "
한나라 왕은 한신을 보내 위표를 치게 했다. [(중학생이 보는 ) 사기열전 2 - 김영수. 최인욱 역해]-114-
-31편 경포열전
-32편 회음후淮陰候열전
이 편은 한신에 관한 전기이다. 회음후淮陰候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항우가 죽은 뒤 한신은 초나라 왕으로 옮겨 갔다가 죄를 지어 회음후淮陰候로 강등되고 반역을 일으켜 멸족의 화를 당하였다.-587-
-광무군은 한신에게 말했다. '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의 실수가 있으며,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것이 있다 ' 고 합니다. 그래서 ' 성인은 미친 사람의 말도 가려서 듣는다 ' 고 했습니다. -600-
-옛날 대부 종種과 범려范蠡는 멸망해 가는 월나라를 다시 있게 하고 월나라 왕 구천을 제후들의 우두머리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지만 자신은 죽었습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611-
-맹호라도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며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秦나라의 용사 맹분孟賁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임금이나 우임금의 지혜가 잇더라도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 ' 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능히 실행하는 것을 귀중하게여긴다는 뜻입니다. 대체로 공이란 이루기는 힘들고 실패하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한신은 괴통의 제안을 거절했다.-612-
한나라 5년 1월, 제나라 왕 한신을 옮겨서 초나라 왕으로 삼고 하비에 도읍을 정하게 했다. 초나라에 이르자 일찍이 밥을 먹여준 무명 빨래를 하던 아낙을 불러 천금을 내렸다. 또 자기를 욕보인 젊은이들 가운에 자기에게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게 하여 모욕을 주었던 자를 불러 초나라의 중위로 삼고 여러 장군과 재상에게 말했다.
" 이 사람은 장사일지니 , 나에게 모욕을 주었을 때에 내 어찌 이사람을 죽일 수 없었겠는가? 그를 죽인다 하더라도 이름이 드러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참고 오늘의 공을 이룬 것이다." -613-
......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진다.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혜와 지모가 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 ' 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엇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
황제가 말했다.
" 당신이 모반했다고 밀고한 사람이 있었소."
드디어 한신의 손발에 차꼬와 수갑을 채웠다. 낙양에 이른 뒤에야 한신의 죄를 용서하고 회음후로 삼았다.-615-
-괴통이 한 고조에게 말했다.
도척이 기르는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입니다. 그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 그러면 폐하께서는 그들을 모두 삶아 죽이겠습니까? " 고조가 말했다. " 풀어 주어라 " 그리고 괴통의 죄를 용서했다.
태사공은 말한다.
만약에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신의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주공周公, 소공召公, 태공망 등의 공훈에 비할 수 있었을 것이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려고 반역을 꾀했으니 온 집안이 멸망한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618~ 619-
.......................................................................................
-광무군 '이좌거' 가 '한신'에게 말했다.
"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에 반드시 한 번 실수는 있는 법이요,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반드시 한 번쯤은 맞는 법이다. ' 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 미친 사람의 말이라도 성인은 이를 골라 갖는다. ' 는 것입니다.
........ 군사를 잘 쓰는 사람은 이쪽의 불리한 것으로써 상대방의 유리한 것을 치지 않으며, 이쪽의 유리한 것으로써 상대방의 불리한 것을 치는 것입니다.
[(중학생이 보는 ) 사기열전 2 - 김영수. 최인욱 역해]-151~ 152-
- 괴통이 한신을 설득했다.
" 공이란 이루기는 어렵고 패하기는 쉬운 것이며 ,때란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운 것입니디. 아, 때란 두 번 다시 오는 것이 아니니 바라건대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 [(중학생이 보는 ) 사기열전 2 - 김영수. 최인욱 역해]-165-
..............................................................................................
-[사기]를 읽으면서 책의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인물들 즉 소하, 정장 부부, 빨래터 아낙네 등등
[사기] 를 읽으면서 스스로 역사 속 인물들을 발견 할 수 있어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신을 도와준 아낙네야말로 숨어 있는 역사의 주인공이라 하겠다. [(열네살에 읽는) 사기열전 - 전호근 옮김 ]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