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444 / 김옥균, 역사ㅏ의 혁명가 - 박은숙 지음

최해식 2016. 3. 20. 20:08

-0330대출함.0402읽음.

-김옥균은 다재다능한 인물이얶다. 그는 시와 글시, 그림에 뛰어났다. 활쏘기.당구.조각.화투  등에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바둑에도 조예가 깊어 현재 일본 바둑사에서도 주목받고 잇다. -8-

 

- 망명 시절에도 김옥균은 인력거를 타면 1원,10원,100원을 가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삯을 지불했고, 온전장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찻값으로 500원을 내자, 김옥균은 1,000원을 내어 일화가 되었다.-36-

 

- 박규수가 누구이던가?

바로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서,개국통상을 주장하여 개항을 이끌어낸 주인공이자 개화사상의 시조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박규수는 1861년 사신으로 청에가서 그곳에서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 무력하기 짝이 없는 청의 현실을 보았다. -53-

 

 

 - 1876년 개항으로 조선은 그동안 오랑캐로 여기던 일본의 무력에 굴복하여 문호를 개방햇고, 이어 서구 열강과도 수호 조약을 맺었다. 이에 조선 사회는커다란 불안과 위기의식을 가졌고,  이러한 나라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고민햇고, 그 방법의 하나로 등장한 게 바로 개화사상이며, 그 개화사상의 중심에 김옥균이 있었다. -56-

 

- 1882년 6월 서울에서 임오군란 이 일어나자, 청은 변란 진압을 명분으로 군사 3,000명을 파견햇다.

청은 임오군란의 책임을 물어 흥선대원군을 텐진으로 납치하고 조선의 내정과  외교를 간섭했다. -63-

 

- 이동인이 일본에서 가져온 물건 중에서 성냥은   그 당시만 해도 조선에서는 화로에 불씨를 보존했다가 그 불씨로 불을 피웠늦데, "갑에다가 그으면 불이 저절로 일어나는 "  성냥이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이후 성냥은 불씨를 지키려고 전전긍긍하던 여인들을 불씨의 굴레에서 해방시켰고, 이동이 용이하여 언제 어디서나 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개화기에 생활의 혁명을 가져온 대표적인 물건이 되었다. -76-

 

- 실패한 갑신정변은 모반謨反으로 규정되었고, 관련자들  또한 역적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김옥균과  박영효,홍영식,서광범,서재필은 '갑신오적甲申伍賊' 으로 지목되어 첫 번째 제거 대상이었다. -124-

 

- 김옥균은 고베에서 '도야마 미쓰루' 를 만나서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하여 속마음을 터놓고 지냈는데, 이를 '간담상조(간과 쓸개를 서로 내보일 정도로 친한 관계)의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도야마는 1881년부터 국가주의적 단체인 '겐요샤'  를 조직하여 활동한 우익 단체의 거물로서,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 때는 대외 강경론을 주장햇다. 그리고 '사이고 다카모리' 의 정한론을 지지하여 일본의 한국 국권 침탈에 일조했다.-155-

 

- '오가사와라'  섬은 30여 개의 화산섬으로 이루어져서 오가사와라 '제도' 라 부른다. 태평양에 떠 있는 이들 섬은 무덥고 습한 아열대 지역으로 기온 변화는 크지 않지만 외지 사람은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다. 오가사와라  제도는 크게 무코지마 열도, 지치지마 열도, 하하지마 열도,가잔 열도로 나뉜다. -172-

 

- 김옥균을 도와준 사람으로는 박규수와 유대치,미국공사 푸트,유혁로,이윤고, 백춘배,와다 엔지로,가이 군지 등 그는 참으로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잇지 않을까?

세상살이가 그렇듯이 인간관계 또한 상대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김옥균도 그들과 돈독한 정을 나누고 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216-

 

- 후쿠자와 유키치는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간 후 '탈아론'  을 발표하여 일본의 대외 침략 정책을 지지햇다. 탈아론이란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사회를 지향한다'  는 뜻이다. 그는 탈아론에서 "일본은 이웃의 나쁜 아시아 나라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고 주장햇는데, 그 나쁜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조선이었다. -276-

 

-..........-286-끝.잘 봄.